2012년부터 2024년까지 그린 다양한 한글의 글자 표현을 풀어본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기에는 도형과 선형을 활용한 단순한
형태의 한글을 주로 그렸다. 글자 조형에 무지하여 과감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를 추구했다. 퇴사 후 홀로 글자를 그리며
시행착오를 통해 글자 조형과 활자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한글타이포그래피학교에서 레터링 교육을 시작한 2017년부터
쓰기도구의 물성과 필법을 이해하고 과한 조형성을 절제하여 보다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다양성을 추구했다. 그리고 현재는 획의
변형보다 낱자의 변형과 결합을 통한 다양성을 탐구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작업을 각 시기 별로 구분하여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의
변화로 인한 글자 표현의 변화를 살펴본다.
현승재
현승재는 흑단, 흑운, 검은고딕 등의 활자와 삼립호빵, 법쩐,
사이버펑크2077 등 다양한 타이틀 레터링을 그렸다.
타입디자인스튜디오 제스타이프를 운영하며,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와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글자 조형을
가르친다.
완성된 획의 형태에서 숨겨진 붓의 움직임을 파악해 내는 일은 획을
역순으로 분해해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획의 전 과정을
재현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붓의 움직임을
모른다면 쓰기는 물론 그리기에도 실패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박 겉핥기식과 같은 방식은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현대 궁체의 획을 분석해 붓이 움직인 길과
붓의 움직임을 파악해 획의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유와 원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쓰기 이론을 함께 고찰할
것입니다. 동시에 고전 궁체에서 현대 궁체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재료와 서사법의 변화가 획에 미친 영향도 짧게나마 같이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규복
한글 서예의 체계적인 이론 확립의 토대를 마련하고 답보상태에
있는 궁체 연구 및 한글 서예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
<획 - 한글 획 이론>2024, <장서각 소장 낙선재본 소설
서체 연구>2023, <조선시대 한글 글꼴의 형성과
변천>2020 외
획은 긋는 것이다. 그러나 활자디자이너는 획을 그린다. 글자 쓰기와
글자 그리기는 서로 다른 행위지만, 처음 활자를 발명할 때, 글씨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글씨는 활자의 근원이다. 결국
활자디자이너는 획을 긋듯 그려야 하고, 나아가 획 표현을
과장하거나 강조하면서 새로운 획을 창출한다. 글자를 그리기 시작한
뒤, 10년이 넘을 무렵, 최정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2004년
세로쓰기 전용 [꽃길]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최정호와 다른
획을 그렸다. 의도한 바는 없었다. 그래서였겠지만, 그 뒤로도
막연히 나만의, 새로운 획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특별히
시도하지 않았다. 획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바람.체]를
그리면서였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획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으로 획을 그렸다. 그 결과 [바람.체]의 획은 고전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괴이한 형태였다. 괴이한 획을 그렸다는 괴로움에, 글씨의
획을 감상한 뒤 그린 것이, 2014년 발표한 [생명]이었다. 나의 ‘획’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용제
한글 활자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세로쓰기용 폰트
[꽃길] [바람.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용서체 [해][각],
기업전용서체 [아리따] 등 디자인. 책 ⟪타이포그래피 용어정리⟫
⟪한글생각⟫ ⟪활자를 디자인할 때 알아야 하는 것⟫ 등 저술.
타이포그래피 교양 잡지 ⟪ㅎ⟫(1~7호), 폰트 문화 잡지
⟪모임꼴⟫(1~5호) 발행인 겸 저자.
한글 고딕체는 1900년 전후에 나타나 〈고짓구체〉로 불렸으며, 그
뒤 여러 출판사와 인쇄소가 한글 고딕체를 개발했다. 그리고 현재
널리 쓰이는 한글 고딕체 표현은 1970년쯤 안정되었다. 한글 고딕체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쓰기의 특징이다. 글씨의 운필이 반영되어 하나의 줄기에서
강약과 이음줄기에서 자연스러운 기울기가 나타나며, [ㅅ], [ㅈ],
[ㅊ] 등 낱자가 비대칭으로 표현된 모습 등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리기의 특징이다. 글자의 공간과 줄기를 물리적으로 비슷하게
작도한 것으로 보인다. 줄기의 굵기가 일정하게 나타나는 모습,
줄기를 수직·수평으로 작도한 모습, 낱자를 대칭적으로 표현한 모습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한글 고딕체 표현은 쓰기와 그리기의 형태가
융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조재훈
조재훈은 활자공간에서 일하는 타입 디자이너이다. 세로쓰기
제목용 서체 〈광장〉을 출시했고, 로고타입·타이틀 레터링이나
활자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활자재현〉 프로젝트에서
보진재 고딕체를 그리고 있다.
새로운 활자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태동하던 1954년. 가독성과
글줄, 가로쓰기 전환, 신식 조판식 등을 고려한표현이 시도되었다.
활자체마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표현을 좆다 보면, 그 활자의 기획
의도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당대의 활자체에는 균질함 속 약간의
불균질함을 가지고 있다. 반듯했다가도 어느 순간 기울었다가,
비대칭적인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고, 붙어 있던 획이 떨어지기도
하며, 없던 표현이 툭 튀어나온다. 의도의 불완전성이 나타난다.
원도활자시대 초기에 개발된 국정교과서 주식회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을유출판사, 평화당, 민중서관, 조선일보의 고딕체를
보고, 그 안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표현과 그에 반하는 표현들을
알아본다. 본 발표를 통해서 다양한 한글 고딕 활자체 표현이
있었고, 그 속에 불안전성이 있었다.
김모은
김모은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활자공간의 일원으로서, 한글 타이포그래피 학계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자 다양한 작업을 한다. 〈활자재현〉 프로젝트에서
최정호의 동아출판사 고딕체를 복원하는 중이다.
최정호는 동아출판사 활자를 1957년에 제작한 뒤, 삼화인쇄소,
보진재, 샤켄, 모리사와 등의 활자를 제작했다. 발표자는 최정호가
초기에 그린, 동아출판사, 삼화인쇄소, 보진재 세 가지 고딕체의
표현을 살펴보았으며, 특히, ‘강약’의 관점으로 관찰했다. 최정호는
고딕체를 그릴 때, 세 가지 글자체의 짜임새마다 차이가 있으나,
글자를 구성하는 줄기 수에 따라 줄기와 공간에 강약을 표현했다.
'줄기의 강약'은 가로 세로 줄기, 삐침과 비낌 줄기, 줄기의 결합부
등 낱글자 곳곳에서 굵고 가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공간의 강약'은
하나의 낱자 안에서 줄기 간격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줄기의 결합
방식 등에 따라서 공간의 크기를 다르게 표현했다. 이러한 줄기와
공간의 강약 표현으로 글자의 짜임새가 균질하게 유지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정은
윤디자인그룹, 타입에디션을 거쳐 현재는 독립 활자디자이너로서
글자가 사용되는 다양한 매체에 관심을 두고 활동한다. 전시 히읗
11회 <쓰임과 세움>에 [은록]이라는 글자로 참여하였다.
모바일 폰트 [TS굴러가는양파], [TS환상의나라] 등을 그렸다.
@eunearchive
한글 명조체는 생성기, 혼재기, 안정기를 거치며 균제미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으나, 각 시기마다 이를 구현하는 상황과
방식은 달라졌다. 상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획의 수가
많거나 적은 경우와 공간이 좁거나 넓은 경우다. 균제미를 확보하는
방식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획의 두께를 전체적으로 줄이거나
일부만 줄이는 것, 표현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 그리고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생성기에는 주로 획 두께의 차이와 표현의
강약을 통해 균제미를 확보했지만, 이로 인해 표현의 통일성이 다소
부족했다. 혼재기에서는 생성기와 유사하게 획 두께와 표현의 강약을
활용했으나, 그 강도는 약해졌고 기울기를 통해 공간을 조절하는
글자체가 등장했다. 안정기에 들어서면서는 이전과 달리 일정한
표현이 자리를 잡으면서 형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균제미를
확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신유림
활자공간에서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를 담당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학사를 졸업하고 활자 디자인에서 서사축 개념의 필요성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용서체 [해] 문장부호
디자인과 한국 스위스 수교 60년 기념 프로젝트 [쓔이써60]에
참여했다. 현재 [활자재현]에서 동아출판사 명조를 그리고 있다.
1954년 첫 한글 원도활자가 제작 된 뒤로, 여러 출판사와 인쇄소에서
활자를 개발했다. 이들 활자 중에서는 활자디자이너와 제작 시기
등을 알 수 있는 활자와 제작 관련 정보가 없는 활자가 있다.
발표자는 원도활자시대 초기에 제작된 최정호의 동아출판사
활자(1957년)부터 삼화인쇄소, 보진재, 국정교과서 주식회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평화당, 민중서관 등 196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명조체의 표현을 비교하고 분석했다. 이 활자체들의
점과 선에서 기필부(머리)와 수필부(맺음), 변곡점, 강약과 대비의
변화 등에서 다양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러 활자체는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 다른 균정함과 불균질함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의 활자체에서 통일된 표현으로 균정함을
만들어냈지만, 모임꼴과 닿자에 따른 불균질한 표현이 공존하고
있다.
박수린
박수린은 세로쓰기용 활자 “서각”을 출시하고, 활자재현 프로젝트
내에서 보진재 명조를 그리고 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이고, 2024년 한국디자인사학회에 학술논문 「방각판본
고전소설 한글 글자체의 "부분이름" 고찰」 을 게재했다. 한글
활자 구조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surin.not.siri
최정호의 동아출판사, 삼화인쇄소, 보진재 명조체를 비교분석한다.
최정호의 세 가지 명조체는 각각 독창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글자의 균질한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주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정호가 설계한 세 명조체는 글자의 길이, 위치 등
세부적인 조건에 따라서 점과 획의 미묘한 차이를 보여준다. 또한
같은 활자체도 글자의 크기에 따라 강약, 비율, 기울기, 곡률 등의
표현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한 예시로 글자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커지는 획의 표현이 있다. 같은 부위도
글자의 안쪽에 있는지 바깥쪽에 있는지에 따라서 굵기, 기울기, 비율
등이 커지는 것을 관찰했다. 최정호는 일관된 형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 변화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윤경
이윤경은 AG 디자인사업부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다. 전시 히읗
11회 <쓰임과 세움>에 [온정]이라는 글자로 참여하였다.
현재 활자재현 프로젝트에서 삼화명조를 그리고 있다.
한글 활자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명조체는 1800년대 말에
나타났고, 고딕체는 1900년 초에 나타났다. 그리고 한글 명조체와
고딕체는 도입기, 혼란기, 안정기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도입기의 한글 명조체・고딕체는 옛활자시대의 글자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주로 표현에서 한글 명조체는 한자 명조체의 획과
같이 그렸고, 고딕체는 붓에 의한 머리와 맺음 등의 표현이 삭제된
모습이었다. 한글 명조체・고딕체가 본격 개발된 시기는
원도활자시대와 겹친다. 여러 출판사와 인쇄소가 명조체・고딕체를
개발했다. 이 시기의 형태는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전환기였고, 글자를 쓰지 않고 그려야 하는 과정에서
글자의 어디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알 수 없는 시대였다. 각자의
의도와 미감을 바탕 글자를 그렸다. 최정호는 혼란기에 동아출판사
명조체・고딕체를 비롯한 삼화인쇄소와 보진재 활자를 개발했다. 이
시기에 최정호가 개발한 명조체와 고딕체의 표현은 이후 안정기에
제작된 명조체 고딕체 표현의 전형이 되었다.
이용제
한글 활자디자이너. 계원예술대학교 교수. 세로쓰기용 폰트
[꽃길] [바람.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전용서체 [해][각],
기업전용서체 [아리따] 등 디자인. 책 ⟪타이포그래피 용어정리⟫
⟪한글생각⟫ ⟪활자를 디자인할 때 알아야 하는 것⟫ 등 저술.
타이포그래피 교양 잡지 ⟪ㅎ⟫(1~7호), 폰트 문화 잡지
⟪모임꼴⟫(1~5호) 발행인 겸 저자.
[활자논의]는 더 나은 한글 글자체를 그려나가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한글 글자체 디자인에 관련된 여러 주제를 하나씩 깊게 살펴봅니다.
과거, 우리가 여러 이유로, 정리하지 못하고 살펴보지도 못한 한글 활자
디자인에 대해서 살피고 정리해서, 그 내용을 논의합니다. 곧,
[활자논의]는 한글 활자 디자인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자리입니다.
[활자논의]는 미래에 살아갈 사람을 위한 자리입니다. 과거에 이어
현재까지, 한글 활자 디자인의 역사는 이것저것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활자디자인 용어는 뒤죽박죽이 되어 무엇이 무엇인지조차
가리키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혼란과 혼돈을 하나씩 논의하여
정리합니다. 앞으로, [활자논의]는 긴 시간 지속할 것입니다. 한번
논의해서 결론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급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논의할 주제를 하나씩 꺼내겠습니다.